황태자 알렉스는 저택의 대문 앞에서 다시 한번 자기 모습을 확인했다.
손거울을 꺼내 들어 확인한 모습은 감쪽같았다.
혹시나 자신을 알아볼 수 있으니 황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검은색 머리를 갈색으로 비약을 통해 바꾸어 놓았다.
황태자가 만화책의 작가인 루퍼트를 골탕 먹이기 위한 준비였다.
그의 가문에 변장하고 찾아가 일부러 무례한 행동을 한 이후에 루퍼트가 무례를 탓하거나 화를 내면.
그제야 정체를 밝히고 황실을, 나아가 황태자인 자신을 모욕한 것이냐며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대놓고 방문한다면 설설 길게 뻔하니 그자의 본성을 알 수 있을 기회이기도 했다.
사실 무례함을 따지자면 황태자인 자신이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와서 화를 내는 것이 더 심하겠지만.
애초에 자신은 망나니란 소문이 퍼져있으니, 이런 행동을 해도 그다지 이상하지는 않을 터.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혹시나 자신을 귀한 신분으로 생각할까 일부러 호위 기사 한 명만 시종으로 변장시켜 데려왔다.
그에 맞춰 컨셉도 준비했으니 서머셋 영지를 방문했다 묶을 곳이 없어 하루 신세를 지는 지방 귀족이라는 설정이었다.
귀족이 찾아온 손님을 내치는 건 무례이니 아마 하루 묵어가라고 권유할 것이고, 그때 이런저런 건방진 행동을 하면 아마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이다.
‘건방진 작자를 혼내줄 생각을 하니 벌써 속이 풀리는 기분이군.’
원래라면 자신과 아무런 연도 없었을 서머셋 백작가였지만, 이제 한동안 황실을 능욕했느니 황태자인 자신을 무시한 거냐 질책받을 예정이었다.
이 모든 건 건방지게 황녀의 뒤에 숨어서 자신을 조롱한 루퍼트 서머셋 그 작자 때문이다.
어디 자신을 직접 두고도 그럴 수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실례지만, 무슨 용무이십니까?”
저택 앞을 지키는 병사 2명이 일단 자신의 신분을 묻는다.
알렉스가 시종으로 분장한 호위 기사에게 턱짓을 한번 하자.
“이분은 서부 클라젠 남작의 장자 ‘랙스’ 공자시며, 현재 서머셋 백작님의 영지에 방문하였는데 인사를 드리러 찾아왔소.”
“안녕하십니까, 랙스 공자님. 혹여 신분패를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척
알렉스는 이때를 위해 마탑에 부탁해놓은 위장 신분패를 꺼내 들었다.
진품과 똑같으니 절대 구분할 수 없을 거다.
병사의 확인 절차가 끝나자 저택의 문이 개방되고 한 명이 자신을 안내한다.
‘시골 영주의 저택치고는 제법이군,’
물론 수도의 저택과 토지의 사정이 다르니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였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어디 내놔도 꿇리지는 않을 크기였다.
“저건 무엇이지?”
하지만 알렉스의 시선은 금세 저택이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
저택 부지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단층 건물 두 곳.
이제 밤인데도 불이 켜져 환했고, 안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아 저곳은 책과 굿즈란 상품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그것이 왜 저택에?”
“그야 도련님께서 정하신 일이라….”
희한한 일이다. 보통 귀족의 저택 부지에는 정원을 꾸미거나 아니면 진귀한 동물들을 관람할 수 있는 동물원이 있는 경우가 보통인데.
공장이라니 그 시끄럽고 요란스러운 것을 왜 저택 부지에 짓는단 말인가?
설마 땅값이 아까워서일 리는 없고.
‘아마 보안을 위해서겠군. 생각보다 경계심이 강한 자야.’
루퍼트에 대한 소문은 대충 들어 알고 있었다.
만드는 책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냉혈한 자로 자신의 아버지인 서머셋 백작을 꼭두각시로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다.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놀라웠다.
귀족들의 세계에서 이런 소문은 나중에 명예에 큰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결함인데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가문을 장악하다니.
“어서 오십시오, 랙스 클라센 공자님. 서머셋 가문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어느새 저택에 도착하자 마중을 나온 집사가 보였다.
“밤중에 실례를 끼치게 되었네. 가주께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괜찮겠나?”
“죄송합니다. 지금 가주와 공자님 두 분 모두 외출 중이셔서 부득이하게 제가 대접을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쳇.
집사에게는 무례를 떨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무례한 행동에 집사가 화를 낸다 한들 나중에 집사를 잘못 교육했다 혹은 잘못 고용했다며 꼬리 자르기 할 게 뻔하지 않은가?
“이런, 내가 때를 잘못 맞춰 왔군. 혹시 오늘 돌아오시지는 않는 건가?”
“아닙니다. 아마 곧 돌아오실 테니 안에서 기다리시지요.”
집사의 안내에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가니 중앙 현관에 걸려있는 초상화가 눈에 띈다.
“저것은?”
알렉스는 깜짝 놀랐다. 황실에도 궁정화가가 있어 그림을 감상한 적은 몇 번 있지만, 저 초상화는 그것보다도 훨씬 수준이 높았다.
“가문의 차남이신 루퍼트 도련님께서 그리신 마님의 초상화입니다.”
“…무척 잘 그렸군.”
알렉스로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림 솜씨였다. 그렇게 잠시 초상화를 감상하는데, 문득 가문의 안주인은 왜 나오지 않았는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안주인분한테라도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마님께서는 이미 5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실례를 범했군.”
“아닙니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차 싶었다.
이 부분은 확실히 자신의 결례였기에 집사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그럼, 응접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맙네.”
그렇게 응접실로 가는 알렉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가지 떠오른 가설 때문이었는데.
‘어머니를 잃은 건가 그 작자도?’
왠지 모르게 자신을 닮았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는 이미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났기에 아까 그 초상화를 보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아버지를 몰아내고 가문을 차지한 것도 아마 그 때문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황후의 자리는 비워둘 수 없다며 새로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아버지를 지금까지도 미워하고 있으니.
그때 자신은 아직 5살에 불과했다. 왜 내가 이 여인을 어머니라 불러야 하는지 이해도 못 했던 어린아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잊기 싫어 떼를 쓰고 투정도 부려봤지만, 아버진 단호하게 물리칠 뿐 결정을 돌리지 않았다.
자신은 비록 황제인 아버지를 어찌할 수 없어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했지만.
자신과 다르게 루퍼트는 분명 그 분노를 표출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자가 만든 신데렐라, 백설공주 모두 어머니를 잃은 주인공이 나왔지.’
인제야 그 작품들이 탄생한 배경이 이해가 갔다.
겉으로 보기에 평화롭고 따뜻해 보였던 그 이야기들은 모두 작가 자신의 자전적 배경을 희망차게 풀어낸 것이다.
다다다!
그런 황태자의 사색을 깨뜨리는 요란스러운 발소리.
알렉스의 시선에 복도를 승마장이라도 되는 마냥 뛰어다니는 여자아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저 꼬맹이는 대체 누구지?
하녀라 하기엔 너무 어려 보이는데.
그렇다고 백작가의 여식이라기엔 입고 있는 옷도 꼬질꼬질하고, 체형도 통통한 것이 귀족가의 영애로 보기도 힘들었다.
“너는 누구니?”
“나는 엘자 에이다! 아저씨는 누구야?”
“아가씨! 이분은 손님입니다.”
집사가 꼬마를 향해 다급히 말하며 자신의 눈치를 봤지만, 이미 알렉스는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아…아저씨?’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호칭이었다. 이제 막 25살이 된 자신을 보고 아저씨라니.
“이 꼬마는?”
“아, 실례했습니다. 서머셋 백작님의 셋째인 에이다 서머셋 아가씨입니다.”
아 그 작자의 여동생이군.
알렉스는 감히 자신을 아저씨라는 무례한 호칭으로 부른 꼬마를 쳐다보았다.
빵싯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눈.
‘한데 입고 있는 옷이 왜 이리 해진 것이지?’
귀족 영애로서 어울리지 않는 통통한 몸은 그렇다 쳐도 하늘색 드레스는 대체 어디서 구한 옷인지 굉장히 꼬질꼬질한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자 알렉스는 분노가 차올랐다.
‘대체 아버지인 서머셋 백작은 딸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단 말인가?’
자신을 핍박하고 둘째에게는 관심조차 없는 황제도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선 신경을 썼는데.
설마 서머셋 백작 그자 여색질이라도 하고 다니는 건가?
알렉스는 자신이 봤었던 책의 내용들이 전부 실화를 기반으로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이 에이다란 꼬마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딱한 것. 한창 어머니의 사랑이 필요한 시기인데.’
그런 알렉스의 마음을 모르는지 에이다는 해맑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는 것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얼어부터라!”
“뭐?”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에 당혹스러운 물음이 나왔건만 에이다의 표정이 급속하게 시무룩해졌다.
“공자님, 죄송합니다. 아가씨 이분은 손님이라 그런 장난을 치면 안 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집사가 황급히 에이다를 말리며 연신 알렉스에게 사과했다.
무슨 장난인지 몰라 얼떨떨한 알렉스에게 알랭이 급히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한창 유행하는 만화책 <얼음의 왕국>에 나오는 주인공을 따라 하는 거란 설명을 듣자 그제야 이해가 가는 알렉스.
‘이렇게 하는 건가?’
움직임을 멈추고 마치 얼어붙은 듯 가만히 있자 에이다는 다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들고 있던 지팡이로 알렉스의 몸 이곳저곳을 쿡쿡 쑤시는 에이다.
“아니 감히 지금 누구의 옥체에!!!”
시종 흉내를 내던 호위 기사가 그 모습을 보고 기겁하며 말리려 했지만.
알렉스가 조용히 눈짓으로 가만히 있으란 신호를 보내자 호위는 안절부절못하며 그저 지켜만 봐야 했다.
‘불쌍한 아이니, 잠깐의 호의는 베풀어 줄 수 있다.’
자신도 이 아이 같은 어린 시절을 겪었기에 지금 얼마나 힘들고 불행할지 알고 있으니.
“풀려라! 얍!!!”
본인이 쿡쿡 찔러도 알렉스가 반응이 없자 그제야 안심하고 마법의 해제를 외치는 에이다.
그 모습을 보자 알렉스는 어딘가 마음 한편이 조금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 보니 꼬질꼬질하긴 하지만 볼살도 그렇고 제법 귀여운 면이 있는 꼬마다.
그래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응?”
“안돼! 에이다는 왕자님이랑 겨론할거라 아무나 쓰다듬으면 안 돼!”
에이다의 대답에 알렉스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신분을 알면 깜짝 놀랄 텐데 말이다.
그깟 왕자 따위 제국의 황태자인 자신 앞에선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거늘.
“꼬마야 기왕이면 왕자보다 황자랑 결혼을 꿈 꾸는 게 낫지 않겠니?”
“시러! 에이다는 왕자가 좋아 황자는 몰라!”
말문이 턱 막힌다.
어떻게 황자보다 왕자를 더 좋아할 수 있는 거지? 1보단 당연히 2가 높은 숫자이듯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데.
“왜 왕자가 더 좋은 거냐?”
“그야 신데렐라랑 백설공주, 인어공주 다 왕자님이랑 겨론하는데?”
망할 놈의 동화책.
아무래도 작가에게 당부해야 할 말이 늘어난 것 같다.
*
“오셨습니까, 도련님.”
“예, 뭐 간단한 회의였는데요. 그나저나 별일 없었죠?”
“아, 손님이 방문하셨다가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손님?
요즘 동화책과 만화책 때문에 워낙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으니 그 때문인가 싶었다.
“무슨 일로 왔던 거죠?”
“영지를 방문하신 손님인데 인사를 드리러 오신 분이었습니다.”
“신기한 분이네. 이 촌구석에 뭐 볼 게 있다고.”
“시간이 늦어 인사는 나중에 하신다며, 그분께서 편지를 남기셨습니다.”
나는 알랭에게 받은 편지를 열어보았다.
「루퍼트 서머셋 경에게.
원래 경에게 할 말이 있어 방문하였지만, 없다고 하여 이리 편지만 남기도록 하지.
원래 자네의 행동을 지적하려 하였으나, 와서 자네의 사정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으니 이번엔 그냥 넘어가려 하네.
세간의 소문은 신경 쓰지 말고 앞으로도 본인의 행동을 밀고 나가길 바라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해할 수 있으니.
아, 그리고 앞으로 작품을 쓸 때 남자 주인공은 왕자 보다는 황자로 쓰는 게 좋을 듯하네.
익명의 이해자가.⌟
“뭐지 미친놈인가?”
당최 내용이 이해가 안 가는 편지를 남겨놓다니 뭔가 꺼림칙하고 불길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혹시나 싶은 마음에 접어서 버리려 했던 편지를 고이 품속에 넣어서 보관했다.
굉장히 찝찝한 느낌. 왕자 보다 황자?
설마 황자가 우리 영지에?
아니 그러면 소문이 안 날 수가 없는데.
생각할수록 골치가 아팠다.
‘진짜 좀 자중해야 하나?’
요즘 너무 활력 포션을 물처럼 마신 부작용인지 나도 모르게 용감해지는 경향이 있다.
다시 한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Drawing Manga in a Romance Fantasy – Chapter 27
Posted by ? Views, Released on January 2, 2025
, Drawing Manga in a Romance Fantasy
Due to being reincarnated into a financially struggling noble family, I had to find a way to make money.
“Just wait one more day, and the next volume will be out!”
“Next week is a hiatus? Are you out of your mind?”
“Hurry up and give me the next volume!”
“Quickly!”
Before I knew it, I was overwhelmed with deadlines instead of romance.